무플 무서워요


[자금성으로 입장]
천안문을 지나 방문한 곳은 세계 최대의 규모인 자색이 금지된 성 바로 자금성(紫禁城,zǐ jìn chéng) 입니다.

자금성은 “궁전은 우주의 중심인 북극성을 상징하는 붉은색 '자(紫)' 와 일반 백성의 접근 금지 구역(禁地) 이라는 禁”에서 연유되었는데… 총 면적 72만 ㎡이며 일명 9999칸의 방이(실제로는 8707칸)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 궁전입니다.

 
[자금성의 현대사]

자금성은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부의가 1924년 까지 살았던 궁궐로 1925년 고궁박물원으로 명칭 및 용도를 변경하였고.. 1971년 문화혁명으로 문 닫았다가 다시 개원하였으며 1987년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한 때는 모택동이 만주족이 오래 살던 봉건 잔재라 하여 공중분해 시킬 생각까지 하였다고 한다.

단문 중앙 출입구를 지나면 이렇게 자금성의 입구인 오문이 보인다.

[오문]
오문은 높이 38미터 벽 두께 36미터의 거대한 문으로 중앙에 서면 엄청난 위압감 느껴진다.

오문은 세계에서 가장 큰 문이며 말 그대로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이 곳에 서서 만약 내가 명나라, 청나라 때 조선에서 온 사신이라면 이 오문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라고 상상해 보았다. 너무 커서 기가 죽진 않았을까? 말이라도 똑바로 할 수 있었을까? 또 먼 길을 와서 지금처럼 아팠다면… 휴!~ 과연 이런 큰 나라와 싸워 이겨 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너무 크다.

조선시대에 사신들이 오면 새벽부터 몇 시간 아니 며칠이고 이곳에서 서성거리며 기다렸다고 한다.
그리고 청나라 관리들에게 삼궤구고두의 예를 배웠다고 한다.


[입장권]

어쨌든 입장권을 끊고 자금성 오문으로 입장하였다.

자금성의 개방시간은 8:30~16:30까지며 티켓은 15:30가지 가능하다고 한다.

입장권은 40위안(7000원 정도)이며 40위안을 더 주고 오디오 가이드를 빌렸다.

오디오 가이드를 빌릴 때는 100위안을 맡겨야 한다.

오문은 총문이 5개인데 이렇게 보통 3개만 보인다.  사실은 자세히 보면 측면 문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문에서 사진 한장 씩 찰칵!!

[입장권과 오디오 가이드]
사실 이 오디오 가이드에 대해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는데…
좀 실망했다. 위치 별로 한번 만 방송이 나오게 되어있는데… 위치 센서가 추워서 그런지 영 엉망으로 잡고…
해당위치에 가도 방송이 안 나올 때도 많고 이미 해당 곳을 지나가서 다른 곳을 보고 있는데 예전에 지나온 곳이 방송 나올 때도 있고…
또한 말투가 북한 표준어 스타일이라… 억양과 말투가 익숙하지 않아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꽤 있었다.


[태화문]
자금성에 들어서면 첫 번째로 보이는 태화전의 정문이자 천자 오문 중 마지막 문
태화문 앞의 대리석으로 만든 5개의 금수교는 오행의 인,의,예,지,신을 상징하는 것임

바로 요 다리들이 금수교

새끼와 함게 있는 서쪽의 암 사자상

여의주를 누르고 잇는 동쪽의 숫 사자상

 

[태화전]

태화전 앞 광장은 자금성에서 가장 넓은 광장으로 3만 8천 제곱미터 정도 된다고 한다.

공식 행사나 외국 사절들이 오면 이곳에서 묵묵히 기다리다가 황제를 보고 삼궤구고두를 하곤 했다고 한다.

마지막 황제를 보면 부의에게 한 신하가 귀뚜라미를 전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이곳에서 찍었다고 한다.

 

[40장의 벽돌]
태화전 앞에 가면 수많은 벽돌이 보이는데…
자금성 밑으로 40장의 벽돌을 깔아 외부에서 땅굴을 뚫어 쳐들어 오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저기 굴러다니는 벽돌도 600년 가량 된 벽돌들이다.


[건물의 계급] 
자금성의 추녀마루를 보면 사진과 같이 잡상 들이 보이는데…
잡상의 수는 그 건물의 계급을 나타낸다고 한다. 
보화전 ,건천궁 9마리
중화전, 곤녕궁, 교태전. 오문, 태화문 7마리 등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하늘높이!!

Trackback :: http://wipen.net/trackback/521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푸푸 2010/03/10 0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귀뚜라미 조아? ㅋ

  2. Favicon of http://noas.tistory.com BlogIcon 배낭돌이 2010/03/13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금성에 저렇게 좋은 가이드가 생겨났다니 으흐흐!!
    멋진 사진 잘 보고갑니당. ^^

    너무나 그리운 곳중에 한군대 인것 같아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용 하늘높이님!!

  3. 김반장 2010/04/11 0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잡상.....우리나라 말로 어처구니....

    그래서 궁궐 전각을 질때 실수로 어처구니를 안 올리면...
    그걸 보고 어이없다는 말로..
    어처구니 없다고 했다는....

요즘 “추노”라는 드라마가 인기인 듯 하다. 회사 일이 조금 늘어 꾸준히 보지는 못했지만… 가끔 봐도 재미도 있고 흥미를 끌기 충분한 것 같다.

이 드라마의 배경으로 병자호란 이후 볼모로 잡혀간 소현 세자의 이야기도 가끔씩 나오는데 그것을 보고 병자호란 그리고 소현세자를 따로 한번 찾아 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는 최근에 자금성에 관한 책을 살짝 보고 있는데…

이 책에는 “삼궤구고두” 라는 주로 자금성에서 했던 청나라 황제에게 하는 인사 법이 나온다.

삼궤구고두란 세 차례 무릎을 꿇고 매 번 3 회씩 머리를 조아려 총 9 번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으로

이 중 조아리는 것이란… 머리로 땅 바닥을 두드리는 것을 말하는데 머리와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날 수록 충성심이 높은 것이라고 인정 받았다고 한다.

책에 보면 병자호란때 인조의 삼궤구고두 치욕 그리고 우리 사신들의 삼궤구고두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

 

병자 호란에 항복한 인조는 1637년 1월 30일 푸른 관복을 입고 청 태종에게 삼궤구고두의 예를 올렸다고 한다. 이를 그 지역 이름을 따서 삼전도의 치욕이라고 한며 청 태종은 그곳에 자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삼전도청태종공덕비(三田渡淸太宗功德碑) 라는 전승비를 세웠다고 한다.
훗날 이 비는 패배와 치욕의 사실을 그대로 보여 교훈이 되도록 하기 위해 사적으로 삼고 삼전도비라고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

갑자기 드는 생각이 엇 내가 삼전동에 산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

그럼 한번 가볼까 라는 생각이 들어 카메라를 들고 잠시 다녀왔다.

 

 

딱히 봐도 특별히 볼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 당시 이것과 병자호란으로 인해 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을 것 생각하니 그냥 조금 씁쓸하다.

삼전도비
주소 서울 송파구 석촌동 289-3
설명 사적 제 101호, 인조 17년에 건립된 비로 청에 패배해 청태조의 요구에 따라...
상세보기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동 | 삼전도비
도움말 Daum 지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도심 속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전거 타고 한강으로....  (5) 2010/07/11
상암 난지 야영장  (15) 2010/04/05
병자호란의 아픈 상처 - 삼전도비  (3) 2010/02/11
북악산 서울 성곽 문화 유산 탐방  (2) 2009/09/30
서울 숲의 봄  (14) 2009/04/09
석촌호수에서... 봄의 준비  (12) 2009/03/31
Posted by 하늘높이!!

Trackback :: http://wipen.net/trackback/514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푸푸 2010/02/11 1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비도 이써꾼.. 몰랐네.. 쩝

  2. 깐따라삐야 2010/04/18 2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석밑에거북이가두마리인이유가 비석만들때 쪽팔려서 거북이를 작게 만들었는데그걸본청나라가
    크게만들라고해서다시커다랗게거북이를만들어서 두개가됫다고하네요ㅜㅜ대굴욕이야ㅜㅜ

  3. Favicon of http://www.lycos,co.kr BlogIcon 깐따삐야 2010/04/22 14: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릇 한나라의 왕이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그나라에 운명이 바뀌지요..인조 아닌 광해군이 계속 이었갔다면 저런 병자호란은 겪지 않았을 겁니다...전혀 왕에 자격이 없는 사람이 왕자리에 않았으니..이나라 역사가 이모양이 된겁니다..자고로 인조 못지 않은 병신같은 왕 하나 더있죠 선조..이두왕들은 조선왕조 역사에 최악의 군주입니다